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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C홍보소식

CMC 역사관

    • 설립배경

      1859년 서울에 시약소가 설치된 이후 1930년대 초까지
      한국 가톨릭의 의료활동은 각 지방에 설립된 시약소를
      중심으로 한 간이진료의 형태로 계속되어 왔는데,
      이러한 의료활동은 한국 전체의 의료활동에 비하여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을지라도 이는 전국에 걸친 자선 사업이었으며,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열성으로 적지않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1921년에서 1930년까지 10년간 사이 경성교구, 원산교구, 평양교구, 연길교구 등에는 모두 11개의 시약소가 있었으며
      21만 여 명에 대하여 의료 혜택을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1921년에는 원내와 왕진 진료가 각각 5,842명과
      989명이었으나 10년 후인 1930년에는 59,090명과
      6,406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무렵 한 언론에서는 선천적 지체 부자유 또는
      정신박약자 그리고 후천적으로 신체장해를 지니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회에서 양육원, 감화원,
      무료 숙박소, 자선 병원 등을 설립하여 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하고 이와같은 일은 국가보다도 오히려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사회사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함을 지적하였는데 이는 그동안 교회 안에서 행하여져 온 의료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성화 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다.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1931년) 기념 사업을 계획하면서 정식으로 제기되기에 이르렀고, 당시 가톨릭 병원
      설립 문제는 안에서의 병원 설립에 대한 기운은
      ‘경성교구 청년 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구체적으로 논의되어 결정하기에 이르렀고 당시 청년 연합회에서 발표한
      ‘병원 기성회 취지회’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초대 라리보 주교(1932~1942) 관련 이미지

      초기 임상사목 장면, 명동성당 이도마 주임신부가 집전 관련 이미지

      “금년은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조선 천주교회에서 처음 맞이하는 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의 해입니다.
      이 100주년 기념을 합당하게 맞이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좋은 사업도 많겠지만, 우리 천주교회의 현상에 비추어 제일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곧 의료 기관의 시설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천주교회의 가장 큰 목적은 물론 사람의 영혼을 구해줌에 있습니다만, 또한 육신 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도 큰 사업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에는 10만 신자가 있으면서도 아직 하나의 병원이 설립되지 못하여 교우들은 막론하고 성직자와 수녀들까지도 병이 나면
      부득이 외교인이나 열교인이 경영하는 병원에 입원할 수 밖에 없어서 많은 불편과 고통을 경험하는 터입니다.
      그뿐 아니라 의료기관의 존재가 외교인에게 진교를 전하는 데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는 여러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대중의 단합적 노력이 아니면 성취될 수 없습니다.”

    • 개원

      여의도성모병원은 1930년 9월6일 이듬해인
      ‘조선교구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을 계획하던 중
      최초로 설립이 논의되어 1935년 3월 11일 재단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에서 당시 경성부 영락정 1정목
      39번지 (현 중구 저동 1가 38번지) 소재의 일본인이 경영하던 무라가미병원을 매입, 그 해 4월 18일 병원설립허가를 받고
      1년간 수리 개조 한 후 1936년 5월 1일 라리보 (Larribea)
      주교의 병원 강복식을 거쳐 5월 11일 역사적인 성모병원의 개원을 보게 되었다.

      개원 당시의 병원규모는 대지 538평, 건평 335평에
      입원실 24병상(전염병실 포함)과 외래 및 악국, 검사실 등이 설치된 크지 않은 규모였으며, 특히 2층에는 가톨릭
      의료기관의 특성으로 오늘의 원목실과 유사한
      경당(敬堂)을 설치하였다.

      의료진은 의사4명 ( 박병래, 윤건희, 마훙룡, 이흥배 )과
      일본인 약제사 1명, 간호부 10명 ( 샤르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9명 포함) 등 총 15명이었고
      주 진료과목은 내과와 소아과였으며 초대 병원장은 당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인 이토오 내과 소속의 대학강사였던 박병래 박사가 취임하였다.

      ‘성모병원’의 명칭은 당시 경성교구장이며
      이사장인 라리보 주교가 해성 (海星) 으로 제의하였으나
      박병래 원장이 성모 (聖母) 로 제안하고 경향잡지사
      사장이던 윤형중 신부의 동의로 1935년 7월 3일
      공식적인 명칭으로 결정되었다.

      성모병원이 개원한 1936년 이전까지의 가톨릭계
      의료기관이 전국적으로 10여 곳의 시약소외에 의원급
      5곳에 불과하였던 것을 감안할 때 성모병원의 개원은
      한국 가톨릭 최초의 정식병원 개원이라 볼 수 있겠다.

      성모병원 기공식, 재단이사장 노기남 대주교와 뉴욕대교구 스펠만 대주교 관련 이미지

      초창기 이동진료 차량 관련 이미지

      개원 원년인 1936년의 1일 평균 내원 환자수는
      15명이었으나 불과 1년 후인 1937년에는 60명으로 급증하여 당시 여의도성모병원의 높은 신뢰도를 반증하고 있으며, 여의도성모병원은 보다 양질의 진료를 위해 1937년 2,000원을 들여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가 장비였던 울트라 테름
      ( 超短波器) 을 구입하였고 병원전체를 신축 확장하려고 계획하기도 하였다.

      또한 여의도성모병원에서는 개원 초부터
      많은 불쌍한 환자들을 돌보아 오던 중 1940년경부터는
      본격적인 자선 진료를 시작 (그 당시 시료병동이라 호칭함) 하였으며, 1946년 9월 23일 당시 저동 2가 1번지 소재의 적산사립병원인 사또병원을 인수하여 주로 자선진료와 장기환자를 도와주었다.

      1964년에는 산재병원옆에 대지 318평, 건평 324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 32병상 규모의 자선진료소를 신축, 나병연구소와 외래진료소를 운영하였으며, 1966년경 제2부속 성요셉병원으로 이전하여 자선진료를 계속하던 중 여의도성모병원의 여의도 이전과 동시에 CMC자선진료부로 개편되어 여의도성모병원 및 강남성모 병원에 자선진료 병상을 배정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자선진료를 위한 단독건물은 없어졌다.

      1942년에는 당시 원정 4정목 1번지에 위치한 예수성심신학교를 일본군이 막사로 징발하려는 획책이 일어나자 경성교구장 노기남 주교가 교구평의회를 열어 학생들을 함경도 원산의 덕원신학교로 이적 시키고 학교건물에는 여의도성모병원 분원을 개설키로 결정하였고 1943년 봄 1년간의 공사후 1944년 4월 대지 1,295평, 건평 429평에 병실수 18, 병상수 35 규모의 분원을 완공하였으며, 1944년 4월 29일 노기남 주교의 강복식 후 5월 개원 하였다.
      분원은 의사 1명 ( 권의정-부원장의 자격 ) , 수녀 6명, 간호사 6명 등 모두 11명의 의료진이 내과, 소아과를 위주로 진료하였고
      1일 평균 재원환자 수는 30명, 외래환자수는 50명 선이었다.

      초기 수술집도 장면 관련 이미지

  • 2016년 실적

    외래환자수630,172
    입원환자수(총재원)144,054
    수술건수14,313
    건진16,829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현황

    규모 본관 ( 지하2층, 지상13층 ) , 요셉관 ( 지하2층, 지상7층 ) , 마리아관 ( 지하1층, 지상8층 )
    대지면적 12,292.00㎡ ( 3,718.33평 )
    건축면적 5,811.68㎡ ( 1,758.03평 )
    병상수 총 458병상 가동 중
    주차대수 총 400대 주차 가능 ( 주차장 244대, 주차타워 156대 )
    교직원수 총 1,146명 ( 교원 141명, 전공의 136명, 직원869명 )
    전문진료센터 14개
  • 2017
    • 09캐나다 비자발급 신체검사 의료기관으로 지정
    • 07나프로 임신센터 개소
    • 03나프로 임신법 국내1호 아기 탄생
    • 01주차타워 루르드 성모 벽화 조성
    CMC 역사관 연혁 중 2017년도 관련 이미지
    2016
    • 06가톨릭 산모·신생아 집중치료센터 외래 리모델링 완료
    • 02보건복지부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 지정
    CMC 역사관 연혁 중 2016년도 관련 이미지
    2015
    • 12통합통증센터 개소
    • 11산모신생아집중치료센터(평온한 만남) 및 호프피스완화의료센터(평온한 별)본격 가동(염수정 추기경 축복식)
    • 09서울성모·여의도성모 One Hospital System 출범(국내최초 2, 3차 병원 통합운영)가톨릭 산모·신생아 집중치료센터 개소
    • 06메르스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합동미사
    • 01상급종합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전환
    CMC 역사관 연혁 중 2015년도 관련 이미지
    여의도성모병원 리모델링 관련 이미지
    2013
    • 05병원 리모델링
    • 03국제진료센터, 갑상선센터, 척추센터, 소화기센터 개소
    CMC 역사관 연혁 중 2013년도 관련 이미지
    2011
    • 04산업의학센터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전
    • 03보건복지부 의료기관 인증 획득(1주기)
    CMC 역사관 연혁 중 2011년도 관련 이미지
    2010~2000
    • 2010.03병원명칭 변경(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 가톨릭대학교 여의도
      성모병원)
    • 2009.04조혈모세포이식센터 및 BMT환자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전
    • 2006.01하이프 암치료센터 개소
    • 2005.05조혈모세포이식 2,500례 달성
    • 2003.07안센터 개소
    CMC 역사관 연혁 중 2010~2000년도 관련 이미지
    여의도 신축병원으로 이전 관련 이미지
    1999~1970
    • 1996.06‘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으로 개칭
    • 1994.12아시아 최대규모 조혈모세포이식 증개축
    • 1992.04가톨릭 골수이식센터 개소
    • 1987.03국내최초 호스피스과 신설
    • 1986.11가톨릭 암센터 설립
    • 1986.07성모병원(명동소재) 폐원, 여의도 신축병원으로 이전
      (대지3,000평, 13,000평, 625병상)
    • 1983.11여의도동에 성모병원 기공식(여의도동 62번지)
    • 1983.03국내최초 백혈병 동종골수이식 성공
    • 1980.05강남성모병원 개원(520병상)
    • 1977.08강남성모병원 건립 착공
    • 1977.02국내 최초 소아(9세 여)의 뇌혈관문합수술 성공
    CMC 역사관 연혁 중 1999~1970년도 관련 이미지
    1969~1930
    • 1969.03국내최초 신장이식 성공
    • 1967안은행 설치
    • 1962.02가톨릭중앙의료원 구성
    • 1966.11국내최초 각막이식 성공
    • 1961.12성모병원(명동소재) 완공(연건평2,893평, 300병상)임상 전과목 실시
    • 1958.03종합병원으로 인가
    • 1954.10성신대학 의대 부속병원으로 인가
    • 1954.05성신대학 의학부 설립
    • 1954.04성요셉 간호고등학교 설립
    • 1936.05성모병원 개원(대지538평, 건평335평, 24병상)
    • 1935.03무라가미 병원 매입
    • 1930.09경성교구 100주년 기념 의료사업추진
    CMC 역사관 연혁 중 1969~1930년도 관련 이미지